💭 다시 들춰보게 되는 장들 —
태초의 말씀, 사닥다리, 그리고 이름
작업을 이어가다 보면,
유독 곡을 완성한 후에도
계속 다시 듣게 되는 장들이 있습니다.
오늘은 신학적으로도,
개인적으로도 마음에 오래 남은 세 장을
소개해드리고 싶습니다.
첫 번째는 창세기 1장입니다.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라는
그 첫 선언을 곡으로 옮기던 순간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모든 것이 혼돈과 공허 가운데 있던 자리에,
말씀 한마디로 질서가 세워지는 장면은 몇 번을 들어도 새롭습니다.
사실 이 장을 작업할 때는 아직 시리즈 전체를
어떻게 끌고 갈지 확신이 없던 시기였습니다.
"빛과 어둠을 나누시고", "궁창 위의 물과 아래의 물을 나누시고" 하는 구절들을
하나씩 가사로 옮기면서,
창조가 무에서 유를 만드는 일뿐 아니라
뒤섞인 것들을 나누고 정리하는 일이기도 하다는 걸 새롭게 느꼈습니다.
인생이 뒤엉켜 있다고 느껴질 때마다 이 장을 틀어놓게 됩니다.
시작이 있었다는 것, 그리고 그 시작이 혼돈이 아니라
말씀이었다는 사실이 묘하게 위안이 됩니다.
두 번째는 창세기 28장,
야곱의 사닥다리 꿈입니다.
형의 축복을 가로채고 도망치던 가장 초라한 밤,
돌베개를 베고 잠든 그 자리에서 하나님이 찾아오십니다.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라는
야곱의 고백을 가사로 옮기면서,
저 역시 스스로 가장 낮다고 느꼈던 시기들을 떠올렸습니다.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 곳,
오히려 도망치듯 숨어 있던 자리에서 하나님을 만났다는 이야기가
유독 마음에 오래 남았습니다.
이 장의 멜로디를 만들 때는 일부러 화려하지 않게,
여백을 많이 두려고 했습니다.
광야의 밤이 그랬을 것 같아서였습니다.
우리가 알아차리지 못하는 순간에도 함께하고 계셨다는 사실은,
이 시리즈를 만들며 가장 자주 곱씹게 되는 위로입니다.
세 번째는 출애굽기 3장,
불타는 떨기나무에서 모세를 부르시는 장면입니다.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는
하나님의 이름 선포를 곡으로 만들면서,
이 짧은 문장 하나에 담긴 무게를 실감했습니다.
다른 신들의 이름은 대개
어떤 역할이나 능력을 설명하는 이름인데,
이 이름은 그저 "있음" 그 자체를 선언합니다.
시간과 조건에 매이지 않는 존재,
언제나 그 자리에 계신 분이라는 이 선언은
성경 전체를 이해하는 하나의 열쇠처럼 느껴졌습니다.
이 부분을 작업할 때는 가사를 최소한으로 줄이고,
그 이름 자체가 가장 크게 들리도록
편곡을 여러 번 다시 손봤던 기억이 납니다.
세 장 모두 배경도, 상황도 다르지만 공통점이 있습니다.
시작하는 자리, 낮아진 자리,
그리고 부름 받는 자리에서 하나님이 먼저 다가오신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준비되었을 때가 아니라,
오히려 가장 준비되지 않았다고 느끼는 순간에 찾아오시는
하나님의 방식이 이 세 장을 관통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시리즈를 계속 만들어가면서,
앞으로 또 어떤 장들이 이렇게 오래 마음에 남을지 기대가 됩니다.
혹시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 중에도
유독 마음이 머무는 장이 있으시다면,
댓글로 편하게 나눠주시면 좋겠습니다. :)

0 댓글